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허망했다. 살아온 인생도 길고 아파서 병원에서 고생하신 날들도 많은데 어쩜 죽음은 그렇게 한순간에 찾아오고 장례는 속전속결 모두가 같은 시간과 절차를 밟아 쏜살같이 진행될까 싶어서. 장례식이 끝난 다음날 이른 아침에 회사에 출근해 밀린 업무를 처리하던 내 모습은 또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던지. 일상은 계속되고 나는 그것에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하고 따라가야 한다는 게 무서울 지경이었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게을렀구나! 싶기도 했다. 언젠가 반드시 마주할 일이란 걸 모든 가족이 알았지만 병원치료에만 몰두했을 뿐. 할머니의 정신이 온전히 남아있을 때 할머니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할머니의 삶을 더 잘 보존, 기억하는 우리만의 방법을 고민하는 데에는 시간을 쓰지 않았다는 걸.
Dick Johnson Is Dead (2020)
Director: Kirsten Johnson
다큐멘터리 감독 커스틴 존슨이 치매를 앓는 자신의 아버지 Dick을 본인의 집이 있는 뉴욕으로 모셔와 돌보며 벌어지는 일들의 기록이다. 작품은 아버지의 노화와 치매가 진행되는 과정을 천천히 따라간다. 그러나 이것이 한 개인과 가족의 홈비디오에 그치지 않는 이유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보다 '잘'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애도하려는 창의적인 노력의 과정에 시청자를 초대한다는 점이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해보겠어?' 질문을 던지며. 감독은 자신이 상상해 본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순간을 영화처럼 촬영하기도 하고, 아버지의 지인들을 초대해 가짜 장례식도 치러본다. 아버지가 볼 하늘나라의 모습도 그려진다. 누군가의 노년이나 치매환자나 호스피스 등을 주제로 하는 다큐멘터리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굉장히 차분하고 정적인 톤과는 구별된다. 하지만 내레이션을 녹음하던 '다큐 감독 커스틴'이 화면 속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울컥하는 순간 그녀는 '딸 커스틴'이 된다. 유머러스함으로 애써 포장했던 무서운 실제(아버지가 곧 떠나실 때가 온다는 것)가 드러나는 순간. 다 보고나면 멜랑꼴리해지는 기분을 어쩔 수 없다. 그렇지만 내게 분명하게 남은 것: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어떤 방식으로든 최대한 기록하자.
'documentari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큐멘터리 Pink Saris: 목소리 내고 행동하는 여성이 바꾸는 것들 (0) | 2024.11.17 |
---|---|
다큐멘터리 Camera Person: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 (2) | 2024.11.13 |
다큐멘터리 Fire of Love: 화산을 사랑한 두 소울메이트 (0) | 2024.1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