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아이슬란드 여행이 나에게 남긴 배움은 단순 명료하다.
니 쪼대로 살아, 넌 아무것도 아니니까.
‘니 쪼대로’ 보다 나은 표현을 못 찾겠다.
네 멋대로 살아? 네 마음대로 살아? 맘에 썩 드는 표현이 아니다. 역시 니 쪼대로 살아… 제일이야. 레이캬비크를 벗어나 골든서클부터 스나이펠스네스 반도의 풍경까지 눈에 담고 바람에 휩쓸리고 비를 맞아 보니까 그렇다. 쪼대로 살어... 거창한 것 될 필요도 없어. 그냥 현재, 지금, 오늘 하루를 후회 없이 지내. 네가 할 수 있는 것 그것뿐이야.
몰아치는 환경-자연이든 사회든 인생에서 내가 만나는 상황들-앞에서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인간의 의지로 뭘 어째보겠다는 생각은 사실 좀 오만하다. 여행 중 아이슬란드 사람들의 사고방식 중 하나는 ‘positivity or complete denial’라고 들었다. 계절과 시기에 따라 극단적이고 혹독한 자연환경을 긍정하면서 이점으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활용하며 살아가거나, 아니면 그냥 무시/거부하고 내 갈 길 간다는 얘기로 이해했다. 장기적인 계획도 세우지 않고, 너무 자잘한 것들을 걱정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자연환경이 안 도와주면 소용없으니까. 걱정하고 신경 써봤자 나만 갉아먹을 뿐이니까. 그저, 내가 해야 할 것을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있으면 결국에는 다 잘 된다는 생각을 하며 산다고 하더라고. 가이드의 입을 빌리면 “Everything will be alright and fall into place in the end.” 그래, 이런 곳에서 살면 인생관이 보통이 아닐 수밖에. 그리고 아이슬란드의 자연과 마주하고 이곳 사람들의 삶의 태도를 엿본 건 나에게도 정말 큰 도움이 됐다.
한때 러브 마이셀프, 러브 유어셀프를 많이 생각하던 시기가 있다. 그때는 ‘나는 세상에 하나뿐인 소중한 존재야.’ 그러니까 스스로를 아껴. 이런 생각의 흐름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내가 좋기도 하고, 정확히 설명하기 어렵지만 정신이 충만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 후로 몇 년 더 살아보고 세상 돌아가는 걸 보고 있으니, 이게 과연 정신건강에 좋은, 인생이란 장거리 마라톤을 뛰기에 도움이 되는 사고방식인지 의심이 강하게 들었다. 나는 이 지구에 하나뿐인 소중한 존재라는 생각은 세상과 불화하며 다치고 상처 입기에 너무나도 좋으니까.
반대로 ‘넌 사실 아무것도 아냐 짜샤.’의 마인드셋이 내게 맞는 것 같다. 아이슬란드가 가르쳐줬다. 이 거대한 지구와 자연 앞에서 점 같은 존재인 나, 를 인지하며 살면 오히려 더 많은 가능성을 보고 품고 도전할 수 있게 되는 것 같거든. 난 언제든 아프고 실패할 수 있는 별 거 아닌 존재니까 가끔은 길을 잃어도 괜찮다고. 원래 그럴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불안하고 조급해하느라 아프지 말라고. 그리고 세상에서 내가 차지하는 부분은 실은 너무나도 작으니까, 내 인생 정도는 내 마음대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후회 없이 살아가도 된다고. 남들과 다른 길을 걸어도, 남들보다 느려도 돼. 실은 다들 자기 인생 사느라 바빠서 너의 성공이나 실패엔 아무도 진정한 관심이 없어. 무언가 특별히 잘난 존재가 될 필요도 없어, 넌 이것도 저것도 될 수 있고 혹은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는데 그마저도 괜찮은 거라고. 니 쪼대로 살아.
아이슬란드에서 폭포도 바다도 산도 빙하도 보면서. 사람의 근심, 욕심이란 게 다 참 하찮다 싶으면서도, 그래도 끝내 사람에게 기대하고 사람을 믿게 되는 요상한 생각의 흐름에 갇혔다. 인간종의 기본값이 질긴 생명력인가 보다 싶은. 난 강풍에 몸을 가누기도 어렵고 숨 쉬는 것도 안 되던데, 저 바다에 나가 먹을 것들을 건져오고 척박한 땅에서 기른 나무로 한 몸 누일 곳도 만들고 그 안에서 노래도 하고 사랑도 하고 성장도 해온 게 사람이란 거잖아. 우린 결국 곧 지구 종말 오는 건가 싶은 날씨에 절망하다가도, 구름 사이를 뚫고 보이는 빛 한줄기와 태어나서 본 것 중 가장 뚜렷한 무지개에 기뻐하며 사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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