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4 첫 학기 개강을 앞두고 주어진 마지막 평일 휴일. 놀러 가자 런던으로.
한 줄 요약 감상 먼저 던짐: 맨체스터가 아무리 영국 제 2의, 3의 도시라 해도 런던은 런던이다.
9월 초, 오후 여섯 시, 런던 하이드 파크는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편안하게 누워서 졸아도, 책을 읽어도, 수다를 떨어도(혼자라 불가능했으나) 피크닉 도시락을 먹어도 완벽할 풍경. 그래서 다음날부터는 나도 공원만 보이면 쪼르르 가서 앉아서 멍 좀 때리다가, 쉬다가 놀다가 했다.
런던에 있는 내내 날씨가 진짜 좋았다. 실은 9월 치고 이상 기온으로 너무 더웠던 거긴 한데. 비 안 오고 흐리지 않아 안 그래도 피곤한 몸이 축축 처지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내 여행 스타일 혹은 취향이 좀 바뀌었나 싶었던 지점. 19년도에 왔을 땐 공사 중이라 보지 못했던 빅벤을 지나가다 봤는데 별 감흥이 없었다는 것. 그냥 큰 시계구나 내가 아이폰 12 미니 가지고 잘 찍으려고 애써봤자 방송으로 본 게 훨씬 멋지구나야. 역시 여행은 카메라빨이다(?) 같은 생각을 하며. 나이들 수록(...) 자연경관이 더 좋아지는 그 루트를 내가 밟고 있는 것 같다.
Royal albert hall에서 BBC Proms <Bruckner’s Eighth Symphony> 공연이 열렸다. 2019년에는 8파운드인가 내고 맨 꼭대기 층에서 프로밍 했었는데, 이번에는 정중앙 좌석에 앉아서 즐기고 싶어서 일찍이 예매. 으흐. 후회 없고 잘 한 선택이었다. 지휘에 맞추어 타이밍과 강약을 조절하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움직임이 한눈에 들어왔다. 소리가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달까. 비비씨 채널에서 동시 중계도 해주는지라 기숙사 티비로도 봤었는데 역시나 장르 불문, 라이브는 라이브였다.
어릴 땐 클래식은 지루하고 졸리다는 편견에 제대로 들어본 적 조차 잘 없었던 것 같다. 바이올린을 배웠는데도! 하지만 크면서 점점 내 몸과 마음의 긴장도가 높을 때, 뭘 들어도 정신 사납게 느껴질 때 클래식을 찾아 듣는 걸 주저하지 않고, 꺼리지 않게 됐다. 서울 시간 밤 10시에 KBS 클래식 FM을 듣는 것이 편안한 하루의 마무리가 되는 행운이 생긴 셈이다. 그래서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 일정이 맞는다면 그곳의 전통 또는 정통 음악 공연장에서 퀄리티가 검증된 콘서트를 경험하는 걸 나의 여행 투두 리스트에 넣게 됨. 평소에 내가 머무는 집, 회사, 대중교통, 학교와 가게들과 달리 막힘 없이 높은 층고, 광각으로 펼쳐지는 무대를 보고 있으니 속이 시원해지기도 하고. 일상과 확실히 다른 공간 속에서 기분을 환기할 수 있는 것도 좋다. 게다가 세계적인 오케스트라, 지휘자, 연주자, 성악가들의 퍼포먼스를 라이브로 즐기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나 잊지 못할 기분 좋은 한 시간 반. 24년도 프롬도 기대하며.
Tate Modern 전시 보러 다녀왔다. 사진(기술) 등장 이후 회화가 어떻게 변했고, 사진과 어떤 관계를 이루었는지, 사진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방마다 준비된 이야기들의 흐름이 이해하기 쉽고, 친절하고, 매끄러워서 기대한 것보다 훨씬 좋았다.
사진의 등장으로 회화는 더 이상 대상을 정확히 묘사해야 하는 의무나 역할에서 벗어나 더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게 되었다(피카소)
What is a truthful representation of reality? Can an image convey the whole picture?
The way we present and arrange pictures determines what we perceive and how we experience them.
다큐멘터리도 이 아이디어들과 질문에 충분히 고민해봐야 할 테다. 연출과 편집이 재밌고 자유로운 활동임과 동시에, 부담과 책임감을 느끼게 되는 이유.
아니 나 정말 너무너무 피곤해서 마틸다 안 보고 숙소로 돌아갈까 생각 진지하게 했었다. 근데 그러면 큰일 날 뻔했네... 내 소중한(강조) 50파운드 날리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revolting childern 라이브로 즐기는 기회를 놓칠 뻔. 이름 모를 호르몬이 싸악 도는 것 같고 맘이 빠운스빠운스 하는 것이, 나 알고 보니 태생이 반역분자인 것이다(!). 성인 배우, 아역 배우 나눌 필요 없이 찐 프로들이 눈앞에서 무대를 휘젓고 다니는데, 대사 한줄, 노래 한 마디, 행동 하나하나에 자연스러움과 자신감이 동시에 보이더라. 집에서 넷플릭스로 봤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생생함에 피곤은 싹 잊고 엄청 집중해서 봤다. 어린이들 동반 가족 관객도 많았는데 애기들이 진짜 좋아하더라... 나도 애기인 척...................... 하고 즐김.
맨체스터 돌아가기 전, 숙소 체크아웃 시간과 기차 시간 사이가 떠서 도서관에 가봤다. 회원증도 잽싸게 만들고. 리딩 룸에서 밀린 일기도 쓰고, 가계부 정리도 하고, 개강이 다가오니 학교에서 보내준 핸드북이랑 전공 교수님 메일도 읽고. 쾌적하고 쾌적하고 또 쾌적하고 이용하기도 편해서 내가 런던 살면 매일 올 것만 같더라고. 그리고 뭔지 모르겠는데 막 공부가 하고 싶어지는 기분. 막상 찐으루 공부하라고 하면 싫겠지,,,,,
가자 가자 이제 집에 가자 노는 건 끝났다 나를 기다리는 건 주 4 학교생활이다
어서 와,,, 대학원은 처음이지(음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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