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우리 모두는 피할 수 없는 일들과 마주하느라, 아무리 노력해도 잊을 수 없는 것들을 기억하느라, 외로움에 몸서리치느라, 나를 미워하느라 고통받는 시기를 거친다. 몇 번이고 반복되기도 한다. 나를 먹고 살리려고 열심히 살아온 것인데, 역설적으로 그 먹고사니즘 때문에 나를 혹사시키는 요상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때문에 내 안에 쌓인 어려운 감정들을 해소할 시간을 갖기도 참 어렵다. 문제는 그것을 제대로 해소하지 않고 모른 척 어물쩍 넘어가려 하면 우리 몸은 신호를 보낸다는 것이다. 더 이상은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고 외치면서. 파업 선언. 이럴 때 나에게 큰 도움이 됐던 것은 혼자 여행 떠나기, 책 읽기, 끝도 없이 잠자기였다. 공통점은 나를 둘러싼 익숙한 환경, 조직, 풍경, 사람들로부터 단절되는 경험. 모든 것에서 단절되어야 나와 연결되었다. 그게 회피나 도망이라 할지라도 분명 도움이 됐다.
The Diamond (2021)
Director: Caitlyn Greene
미국 아칸소 주에 위치한 Crater of Diamonds State Park에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고대 화산 분화구였던지라, 땅이 비옥하고 다이아몬드를 발견할 수 있어서다. 번잡한 일상과 나를 분리시킬 수 있는 공간. 감독은 이곳에 대한 기사를 읽고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무슨 사연을 가지고 땅을 파러 가는지 알고 싶어 제작을 시작했다고.
16분 정도 러닝타임에 총 다섯 그룹의 인물이 등장한다. 모두 각자의 인생에서 스스로 소중히 여겼던 무언가를 상실한 사람들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자매, 남편이 아픈 부부, 아들을 잃은 부부, PTSD를 앓는 퇴역군인,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들을 그리워하는 남자까지. 그들은 아픔을 묻거나 의미를 찾으려, 잊거나 기억하기 위해서, 간절히 기원하거나 마음을 비워내기 위해서, 찾거나 버리기 위해서 땅을 판다. 이들은 다이아몬드를 찾았을까?
감독이 이 주요 인물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인터뷰를 진행했을지가 궁금해졌을 정도로, 짧은 시간 동안 전달되는 울림이 컸다. 인터뷰 사이의 공백과 말 줄임을 그대로 살린 편집, 땅을 파는 손이나 집중한 얼굴 클로즈업 샷들과 줌인 또는 줌아웃으로 광활한 대지와 작은 사람들을 대비시키는 컷들도 인상적. 무엇보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 땅을 헤집는 행위와 다이아몬드라는 개념이 다르게 해석되고 여러 감정을 이입시켜볼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었던 작품.
Diamond의 어원인 Adamas는 '파괴할 수 없는', '정복할 수 없는', '불멸의'를 뜻한다고 한다.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의 입장에서 얼마나 이상적인 상태인지. 그래서 더욱이 이 공원을 찾아와 묵묵히 땅을 헤집는 사람들의 모습이 종교 수행자와 겹쳐 보였던 것 같다. 깊게 판 구덩이에서 아무것도 건져 올리지 못했어도, 사람들은 결국에 모두 다른 모양의 자신만의 '해소된 상태' 그리고 '이상적인 상태'를 찾을 것이라고 믿는다. 일단 나에게 쉼을 허락하고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만 한다면.
추가) 감독 인터뷰
https://www.99.media/en/what-do-we-dream-of-as-we-dig-for-a-diamo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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